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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세계] 낮은 혼인율과 연애산업 호황의 역설

영국 속담에 ‘돈 없이 연애결혼 하면 즐거운 밤과 슬픈 낮을 갖게 된다’는 말이 있다. 젊은 혈기에 사랑만으로 결혼하는 시대는 옛날에도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았나 보다. 이제 우리는 연애-결혼-출산이라는 과정이 무너진 세상에 살고 있다. 2022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자. 한국의 청년 중 65%가 비(非)연애, 그중 70%가 자발적 비연애를 선택했다.   프랑스 젊은이들의 성관계 횟수는 해를 거듭해 감소했다. 2006년 조사(프랑스 현지 매체 리베라시옹과 프랑스여론연구소)에서 18~24세 응답자 중 5%만 ‘1년간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2024년 조사 결과 이 수치는 28%까지 올랐다. 어디 프랑스뿐인가? 젊은이들의 ‘혼자도 벅차다’는 인식 변화는 주요 선진국의 뉴노멀로 정착했다.   혼술에 혼밥이 어색하지 않은 요즘 아이러니하게도 연애산업은 호황이다. 청년 세대는 환승연애, 솔로지옥을 포함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열광하고 있다. 본인은 현실적 이유로 연애에 따른 감정 소비를 원치 않지만 연애의 대리만족을 위해 이런 프로그램의 열렬 시청자라니 묘하다.   실제 연애에 적극적인 청춘은 상대방 탐색에 과거보다 과(過)몰입한다. ‘틴더’, ‘글램’, ‘위피’ 같은 데이팅 앱 시장이 호황이다. 원하는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만 만나려는 소비자 욕구를 위해 만든 온라인 서비스다. 적절한 ‘필터링’으로 사용자를 선별하고 ‘매칭’ 과정 후에 이성 간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혼인율은 줄었으나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사람은 오히려 늘었다. 결혼과 육아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시대에 자기에게 꼭 맞는 상대방을 선택하려는 청춘의 욕구는 커졌다. 혼인의 인기는 낮지만 젊은 층의 맞춤형 결혼 컨설팅엔 불황이 없다. 경제적으로 충분하지 않아도 서로를 응원할 용기가 있다면 낮과 밤이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원경 /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돈의 세계 연애산업 혼인율 연애산업 호황 환승연애 솔로지옥 연애 리얼리티

2024-08-26

[돈의 세계] 이스라엘과 한국의 다른 탐사시추 역사

석유왕으로 불린 록펠러는 행운은 진실로 원하는 사람에게 찾아간다 했다. 한국은 산유국이었다. 1998년 발견한 동해 가스전은 2004년부터 가스와 석유를 뿜었다. 2021년 말 2조6000억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수명이 다해 시추를 중단했다.   석유 찾기에 가장 좋은 곳은 이미 석유가 발견된 곳이다. 한국석유공사가 동해지역을 중심으로 대륙붕 탐사에 나선 이유다. 일본도 동해 상에서 유·가스전 탐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서해 인근 장수 분지에서, 남해에 근접한 동중국해에서 탐사하고 있다. 전체 시추공수는 올해 6월 기준으로 중국(4만8799), 일본(813), 한국(71) 순이다. 석유탐사에 적극적인 이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표현이 있다. 한번 발견된 석유자원은 끊임없이 생산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과 이스라엘은 과거 모두 자원 빈국이었다. 이스라엘은 1990년대 말 얕은 바다에서 가스전 발견에 성공한 후 우리와 다른 길을 걸었다. 우리는 천해(淺海) 가스전 발견 후에 심해 탐사시추를 단 3곳에서 진행했다. 이스라엘은 수심 700m 이상인 곳에서 28개 탐사시추를 했다. 그 결과 2009년 최초로 대형가스전을 발견했다. 이후 가스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모해 자원 부국이 되었다. 이스라엘 북부 타마르 해역에서 채굴한 가스는 이스라엘 발전에 필요한 에너지의 40%를 담당한다. 우리도 이스라엘의 자원개발 성공 모델을 기반 삼아 적극적인 심해 탐사를 하면 행운과 성공의 역사를 쓸 수 있지 않을까.   경북 포항 영일만 일대(제8광구, 6-1광구 북부, 6-1광구 중동부) 석유 매장 논란이 여전하다. 탐사시추 단계에서 석유를 발견할 가능성(지질학적 탐사 성공률) 20%는 굉장히 높은 수치다. 금세기 최대 심해 유전을 발견한 가이아나도 탐사 성공률이 16%였다. 성공률이 가이아나의 숫자를 넘는다면 진정 도전해도 괜찮지 않을까. 조원경 /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돈의 세계 이스라엘 탐사시추 탐사시추 역사 심해 탐사시추 탐사시추 단계

2024-07-28

[돈의 세계] e-퓨얼과 내연기관의 존속

선진국을 필두로 2035년부터 가솔린·디젤 신차 판매를 금지한다는 발표가 잇따랐다. 현대차그룹도 2045년 내연기관차 판매 전면중단을 선언했었다. 돌연 미국과 유럽이 배출가스 규제를 완화하고 전기차 신차 목표도 수정했다. 내연기관차 제조사들은 반색했다. 최근 전기차 시장 성장이 예전만 못하다. 소비자들은 전기차의 비싼 가격, 줄어든 보조금, 부족한 충전 인프라를 이유로 전기차 구매를 망설인다. 유럽연합(EU)의 내연기관 중단 연기 움직임도 감지된다. 현대차그룹이 2년 만에 신형 내연기관 엔진 개발에 착수했다.   내연기관차 존속 연장에는 분명한 요인이 있다. 독일의 건의를 받들어 EU는 친환경 내연기관차는 퇴출 대상에서 제외했다. 대표적인 친환경 합성연료에는 e-퓨얼(electricity-based fuel)이 있다. 이는 재생에너지나 원전으로 만든 친환경 전기를 사용해 만든 수소에 이산화탄소를 섞은 탄소 중립 연료다. 제조 방법과 반응 조건에 따라 합성 가솔린, 디젤, 항공 연료 등 다양한 제조가 가능해 수송용 대체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석유와 가스가 나오면 얼마나 좋겠냐만, 다른 에너지도 있다.   e-퓨얼은 석유 한 방울 없이도 차를 몰 수 있다. 연소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나 제조할 때는 이산화탄소를 활용하고 완전 연소 비율이 높다. 기존 경유차 대비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배출량이 20~40% 수준이다. 내연기관차나 항공기에 사용하면 기존 인프라를 사용해도 되니 얼마나 좋나. 독일 다음으로 이 분야에 조예가 깊은 일본의 야심은 상당하다. 2050년까지 e-퓨얼 가격을 가솔린 가격 이하로 낮추려 한다. 올해 4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의 공급망 협정 정식 발효로 국내 수소 산업에도 기회가 왔다. 가속화하는 유럽과 일본의 e-퓨얼 사업에 뒤처져선 안 된다. 합성연료 시대를 하루빨리 앞당겨야 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조원경 /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돈의 세계 내연기관 퓨얼 내연기관차 존속 내연기관차 제조사들 친환경 내연기관차

2024-06-23

[돈의 세계] K전략산업 이야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사진)과 한국형 원전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T-50은 무관심 속에서 날아올랐고, 한국형 원전은 극심한 반대를 뚫고 건설됐다.   T-50이 초도비행에 성공한 2002년 8월 20일. 개발·제작에 참여한 한국우주항공 사람들과 관리를 맡은 공군 관계자들은 감격에 휩싸였다. 외부 반응은 없다시피 했다. 저녁 방송은 이 성과를 단신으로 처리했다. 다음 날 신문 기사는 단 한 건이었다.   한국형 원전의 기본형인 한빛 3·4호기 건설이 추진되던 1980년대 중반. 한국 전역에서 반핵운동이 타올랐다. ‘반핵’은 ‘반전 평화’와 연대했고, 그 기치 아래 해당 지역 주민과 사회단체, 대학 운동권이 결집했다. 야당도 동조했다.   T-50과 한국형 원전은 미국 모델에 바탕을 두었지만 국내 기술진의 손으로 설계됐다. 그래서 업그레이드가 가능했다. T-50을 기본형으로 경공격기 TA-50에 이어 본격 경공격기 FA-50이 나왔다. 한국형 원전은 OPR1000에서 APR1400으로 개량됐다. 그 결과 발전용량이 1000㎿에서 1400㎿로 커졌고, 계속운전 갱신기한이 40년에서 60년으로 연장돼 경제성이 좋아졌으며, 안전성과 방재력도 강화됐다.   두 전략산업은 수출을 장기 목표로 잡았다. 1989년 기초연구를 승인받은 T-50과 1984년 착수된 한국형 원전은 약 20년 뒤인 2009년 나란히 수출 전선에 나선다. 한국형 원전이 먼저 개가를 부른다. 아랍에미리트(UAE)에 4기를 수출하는 계약을 따낸다. T-50은 이때 싱가포르에서는 고배를 마시지만, 2011년 인도네시아와 16대 수출 계약을 체결한다. 이후 주력이 된 FA-50은 누적으로 138대가 수출됐다.   FA-50 추가 수출 노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T-50이 지난달 스페인의 새 고등훈련기 후보 중 하나에 올랐다. 한국형 원전은 체코 수주를 놓고 프랑스와 경합 중이다. 시원한 낭보를 기대한다. 백우진 / 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 대표돈의 세계 전략산업 이야기 한국형 원전 수출 계약 추가 수출

2024-06-10

[돈의 세계] 파워에이드의 도전

투자자 워런 버핏은 코카콜라를 즐겨 마신다.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는 코카콜라의 대주주다. 그는 코카콜라 이사로 17년간 재임했다.   ‘오마하의 현인’도 실수한다. 코카콜라가 2000년 퀘이커오츠를 인수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버핏이 주도했다. 퀘이커오츠는 2001년 경쟁사 펩시코로 넘어갔다. 퀘이커오츠의 스포츠음료 게토레이는 1위 브랜드로서 매출 증가율이 연간 두 자릿수에 달했다. 반면 코카콜라의 파워에이드는 힘을 못 쓰는 상태였다. 게토레이를 앞세운 펩시코 주가가 기세를 올리는 동안 코카콜라 주식은 횡보한다. 버핏은 이 기간에 코카콜라 투자에서 재미를 못 보고, 2006년 이사직에서 물러난다.   게토레이는 미국 플로리다대학교에서 탄생했다. 이 대학 풋볼팀 게이터스(Gators)의 부코치는 1965년 여름, 훈련 후 선수들의 컨디션을 어떻게 하면 빨리 회복시킬까 고심했다. 그의 의뢰를 받은 이 대학 연구진이 염분과 당분을 첨가해 체내에 빨리 흡수되는 음료를 개발했다. ‘게이터’를 돕는다는 의미에서 ‘게토레이드(Gatorade)’라는 이름이 붙었다. ‘게토레이드’는 한국에 라이선스되면서 ‘게토레이’로 등록됐다.   스포츠음료 시장에서 게토레이는 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장조사회사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게토레이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64%였다. 파워에이드는 14%에 그쳤다. 코카콜라가 2021년 인수한 바디아머의 점유율은 12%였다. 한편 한국 시장은 포카리스웨트가 약 절반을 점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파워에이드가 7월 개막하는 파리올림픽을 기다리고 있다. 코카콜라가 올림픽 공식 후원사인 덕분에 파워에이드도 공식 스포츠음료로서 올림픽 마케팅 활동을 다채롭게 펼치기로 했다. 선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동안 스포츠음료 브랜드들의 경쟁도 후끈 달아오르겠다. 백우진 / 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 대표돈의 세계 파워에이드 도전 가운데 파워에이드 스포츠음료 게토레이 스포츠음료 시장

2024-06-03

[돈의 세계] AI와 디지털 탄소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주가가 급등했다. 압도적인 1분기 실적에 액면분할 계획까지 겹치며 시장이 호응한 결과다. 지난 3월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중국발전포럼에서 AI가 탄소배출을 줄일 핵심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역시 테슬라 오토파일럿 같은 AI가 탄소배출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한다고 봤다. AI는 사용자 생활 패턴을 분석해 가전 전원을 제어한다. 생산 과정에서 최적 프로세스를 학습해 불필요한 공정을 줄인다. AI가 인간 능력으로 어려운 부분까지 세밀히 계산해 에너지 절감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다. AI 때문에 디지털 탄소 중립이 중요해졌다.   넷플릭스의 탄소 발자국은 15만 가구의 도시에서 1년 동안 배출하는 탄소 배출량과 비슷하다. 앱 사용 시 1분 동안의 탄소배출량은 틱톡을 사용할 때 2.63g으로 가장 높고, 인스타그램은 1.05g, 유튜브는 0.46g에 달한다. 스마트폰을 2시간 사용하면 경차로 1.4㎞를 달릴 때 배출하는 양만큼 탄소가 발생한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디지털 탄소에 노출되어 있다. 디지털 디바이스, 네트워크, 서비스 사용과 운영이 온실가스 배출량과 에너지 소비량에 과부하를 일으킨다.   전기 먹는 하마가 된 AI도 디지털 탄소의 주범이란 멍에를 지게 되었다. 생성형 AI발(發)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으로 전력난이 심각하다. 대형 IT 기업은 데이터센터 입지 선정에서 전기 공급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AI가 디지털 탄소 중립 기술인데 지구촌은 AI가 과도한 연산으로 전기를 축낸다고 불만이다. 삼성전자 고대역폭메모리(HBM)가 발열과 전력 소비 문제로 엔비디아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소문이다. 하루빨리 저전력 반도체 칩을 만들어야 한다. 태양광, 풍력, 소형모듈원전(SMR)만으론 친환경 전력 공급이 부족하다. LNG 발전소가 가교역할을 하도록 사용을 늘려야 한다. 조원경 /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돈의 세계 디지털 탄소 디지털 탄소 탄소 배출량 디지털 디바이스

2024-06-02

[돈의 세계] 『브리태니커』 리덕스

“어렸을 때 우리 집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결혼할 때 오빠가 『브리태니커』를 결혼 선물로 줬어요. 오빠가 보기에는 그게 없으면 제대로 된 가정이 아니었죠.”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여동생 조안 파인만이 이렇게 회고했다고 책 『리처드 파인만』은 전한다. 천체물리학자가 되는 조안은 1948년에 결혼했다.   『브리태니커』는 앞서 20세기 들어 미국에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영어권 최초로 1768년부터 이 백과사전을 발행해온 스코틀랜드 회사의 소유권이 1901년 미국으로 넘어가면서였다.   『브리태니커』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68년 한국지사를 설립한 한창기는 이를 백과사전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고, 그 수익으로 월간 ‘뿌리 깊은 나무’를 발행하면서 우리 문화를 보듬었다. 한창기가 도입·실행한 현대적인 판매 시스템 속에서 나중에 웅진그룹 회장이 되는 윤석금이 54개국 최고의 『브리태니커』 세일즈맨에 올랐다.   콘텐트의 블랙홀 인터넷에는 이 백과사전도 버텨내지 못했다. 1990년 12만 질이 팔리던 전성기는 이내 꺾였다. 2012년 종이 책 발행이 중단됐다.   그랬던 『브리태니커』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르면 6월 뉴욕증시 기업공개(IPO)를 추진한다고 보도됐다. 유료로 제공하는 온라인 서비스와 학생 대상 교육 서비스 등 안정적인 수익원을 마련했으며 기업가치는 10억 달러로 평가된다고 전해졌다.   부활의 저력은 무엇일까. 첫째가 ‘품질이 뛰어난’ 지식의 방대한 저량(貯量)이다. 파인만은 이 백과사전의 설명은 “설령 내용이 압축돼 있더라도 전부 자세히 나와 있었다”고 말했다. 둘째는 이를 시의적절하게 홈페이지를 통해 유량(流量)으로 내보내는 큐레이션이 아닐까 싶다. 연간 온라인 페이지뷰는 70억건에 이른다고 한다. 콘텐트 서비스 사업자라면 참고할 대목이다. 백우진 / 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 대표돈의 세계 브리태니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백과사전계 베스트셀러 콘텐트 서비스

2024-05-01

[돈의 세계] 금융허브 유적지 홍콩

“아시아에서 현재까지 다른 국가나 경제가 홍콩을 따라가기 어려운 것이 금융 분야다.” 이는 2017년 한 국내 일간지에 실린 전문가 분석이다.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지 20주년이 된 때였다.   불과 몇 년 새, 금융허브였던 홍콩이 금융업 쇠락지역으로 전락했다. 홍콩 항셍지수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하락했다. 1964년 이 지수가 산출된 이후 처음이다. 홍콩 증권사 중 2022년에 49곳이, 지난해에는 30여 곳이 폐업했다. 경제 전반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전문직을 비롯한 경제활동 인구는 덜 들어오거나 탈출하는 가운데 고령자와 중국 본토 출신이 늘고 있다.   홍콩 위상이 급전직하한 원인으로 홍콩 증시의 중국화 등이 꼽힌다. 중국 본토 기업이 홍콩 주식시장의 70%를 차지하게 됐고, 그 결과 홍콩 증시는 중국 경제의 부진에 동조하게 됐다.   중국의 통제 강화를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은 1997년 홍콩 반환 이후에도 2047년까지 50년간 홍콩에 고도의 자치와 기존 영국식 제도의 유지를 보장하겠노라고 앞서 약속한 바 있다. 중국은 이를 어기고 2020년 홍콩국가보안법을 변칙 처리해 시행했다. 지난달에는 홍콩국가보안법의 확장판인 기본법 제23조가 통과됐다. 이를 두고 “관에 못을 하나 더 박는 짓” “비즈니스 허브로서 홍콩이 갖고 있던 명성을 더 해칠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돈과 금융업은 속박을 싫어하고 자유를 찾아 이동한다. 역사상 대표적인 사례가 네덜란드에서 나타났다. 이베리아반도의 카스티야·아라곤 연합 왕국은 15세기 말 현지 유대인에게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떠나라고 명령했다. 유대인들이 16세기 중엽부터 안착한 곳이 관용의 도시 암스테르담이었다. 네덜란드는 17세기 금융허브로 번영했다. 연합 왕국의 재정과 경제는 점차 기울었다. 중국은 황금알을 낳던 홍콩의 자유를 더욱 옥죄고 있다. 백우진 / 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 대표돈의 세계 금융허브 유적지 금융허브 유적지 홍콩 항셍지수 홍콩 증시

2024-04-15

[돈의 세계] 내 이름은 알루미늄

이 몸은 한때 지상에서 가장 고귀했다. 나폴레옹 3세(재위 1852~70)는 최상급 귀빈에게만 나로 만들어진 나이프와 포크를 내놓았다. 금 소재 식탁용 날붙이류는 그 다음 등급 진객에게 제공했다. 1884년 세워진 미국 워싱턴 기념비의 꼭대기에는 나로 제작된 무게 2.7㎏의 피라미드가 씌워졌다.   실은 흔하디 흔한 게 나다. 지각의 8%를 차지하고, 산소와 규소에 이어 셋째로 많다. 다만 보크사이트에서처럼 다른 원소와 결합되어 존재한다. 나는 1825년에 처음 분리·추출됐지만 수요에 비해 생산량이 태부족했다. 그 후 60여 년간 이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던 1886년. 미국 오벌린대에서 화학을 배우던 23세 학부생 찰스 홀이 전기분해로 나를 분리해낸다.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의 동갑내기 야금기사 폴 에루가 거의 같은 공법을 개발한다. 홀은 공장을 세우고, 이는 훗날 알코아가 된다. 대량 생산되면서 내 몸값은 급락한다. 화려한 최상류층 식탁을 누비던 시절은 갔다. 나는 깡통 등 생활용품의 소재로 확산된다. 경제학의 ‘희소성과 가격’ 원리를 설명하기에 좋은 사례다.   근년 들어 나는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배터리 장착으로 무거워진 전기차를 중심으로 감량을 위해 나를 더 활용하고 있다. 원자재시장 분석회사 코리아PSD가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차량 한 대당 투입량은 2006년 121㎏에서 지난해 205㎏으로 약 70% 늘었다.   나는 대개 알루미늄(aluminium)이라고 불린다. 리튬과 마그네슘, 칼슘 등 여러 원소의 이름과 ‘ium’ 돌림자가 같다. 미국인들은 나를 알루미넘(aluminum)이라고 부른다. 이는 내 ‘은인’ 홀이 광고 문안에서 낸 오타에서 비롯됐다. ‘um’으로 끝나는 이 별칭도 나쁘지 않다. 백금 플래티넘(platinum)과 같은 항렬이니. 이름이야 어떻거나. 세상 곳곳에서 내가 더 요긴하게 두루 쓰이게 되면 그만이다. 백우진 / 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 대표돈의 세계 알루미늄 이름 소재 식탁용 원자재시장 분석회사 동갑내기 야금기사

2023-11-15

[돈의 세계] 10년물 국채금리와 시장 불안

유가 인상, 긴축 장기화로 미국 채권시장이 불안하다. 미 10년물 국채금리가 2007년 이후 최고치다. 10월 4일(현지시간) 장중 4.9%에 근접했다. 위험자산인 주식은 채권금리 등락에 따라 움직였다. 주식은 예금이나 국채보다 높은 수익률 할증(프리미엄)을 요구한다. 주식의 리스크 프리미엄은 주당 순이익률에서 10년물 국채금리를 뺀 값이다. 기업 순이익이 좋거나 장기금리가 낮아져야 주식시장 상승이 가능하다. 헤지펀드계 대부 레이 달리오는 10년물 금리 5%를 예상했다. 정점은 지났을까.   30년래 최고인 미 30년 주택 모기지 금리는 어떻게 산정할까? 10년물 금리에 대출은행 가산 금리를 합해 계산한다. 미국 온라인 부동산중개 사이트 질로우의 8월 집값 예측은 충격적이다. 미국 주택가격이 올 연말까지 5.8%, 내년 7월 6.5%까지 오른단다. 이유는 뭘까? 낮은 금리로 30년간 빌린 다수가 고정금리 대출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은 그들에겐 남의 일이다. 기준금리가 0%대였을 때 더 낮은 금리로 갈아탔다. 이런 집주인이 고정금리를 지키려 이사를 안 하려 하자 기존 주택공급이 줄었다.   Fed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지난해 10월 10년물 국채금리는 4.25%까지 올랐다. 주식시장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았다. 이후 10년물이 올 5월 3.3%대까지 내리자 증시는 급반등했다. 10년물이 정상화하면서 급등해 전 고점을 뚫자 증시는 재차 조정을 크게 받았다.   한국 채권, 주식, 외환 시장도 불안하다. 큰일 없기를 바라며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를 바라본다. 장기금리가 상승할 때 일본은행은 장기채를 사서 금리를 1% 내로 낮추려 한다. 엔화 방어를 위해 미 국채를 내다 팔고 일본 장기국채는 사들인다. 세상은 낮은 금리의 엔화를 빌려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 이런 엔캐리트레이드 청산이 시장 급변으로 급격히 이루어지지 않길 바란다. 조원경 /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돈의 세계 국채금리 시장 기준금리 인상 주식시장 상승 시장 불안

2023-10-06

[돈의 세계] 전기시대의 자원 개발

자원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발견된다. 인류는 자원 고갈 위기에 처할 때면 열망과 창의력, 끈기로 새로운 부존 장소를 찾거나 대체 자원을 개발해왔다. 에너지 자원의 경우, 일례로 19세기 말 석탄 소진이라는 도전에 대응해 석유를 찾아냈다.   이제 에너지 패러다임이 석유에서 전기로 바뀌고 있다. 전기시대의 필수 자원이 이차전지에 들어가는 니켈과 리튬을 비롯한 금속 광물이다. 탄소중립 목표를 이행해나가려면 니켈과 리튬을 점점 더 많이 캐내야 한다. 세계 각국이 2050년 목표를 달성하려면 2040년에는 2020년에 비해 니켈은 19배, 리튬은 42배 필요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1년 전망이다.   새로 주목받는 니켈 부존 장소가 심해저다. 특히 하와이 동남쪽 ‘클라리온-클리퍼턴 해역(CCZ)’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면적 450만㎢인 이곳의 해저에는 니켈만 3억4000만t 매장돼 있다고 추정된다. 이는 전 세계 지하 매장량의 3배가 넘는다. 니켈은 망간단괴(團塊)에 함유되어 있다. 지름이 3~4㎝인 망간단괴에는 철과 망간, 코발트, 니켈, 크롬 등이 포함돼 있다. 한국은 2002년 CCZ에 독점 탐사광구 7만5000㎢를 확보해 채굴 기술을 가다듬어왔다.   금속 광물을 찾는 눈은 이미 우주로도 향했다. 일차 대상으로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 프시케가 정해졌다. 최대 지름이 226㎞인 프시케는 금과 니켈, 철 같은 금속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애리조나주립대는 오는 10월 프시케 탐사선을 발사할 계획이다.   심해저 광물은 환경 측면에서 찬반 논란에 휩싸여 있다. 목표를 탄소중립에 맞추면 심해저 광물 채굴은 기존 방법보다 친환경적이다. 심해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반대가 있다. 심해저 광물을 활용하려면 열망과 창의력, 끈기 외에 마음이 하나 더 필요하다. 여러 목표를 조정하는 지혜다. 백우진 / 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 대표돈의 세계 전기시대 자원 에너지 자원 심해저 광물 자원 고갈

2023-09-08

[돈의 세계] ARM의 진화

도토리거위벌레는 한여름에 자식 농사를 짓는다.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그 속에 알을 낳는다. 그다음 긴 주둥이로 도토리가 달린 가지를 톱질해 자른다. 알이 밴 열매는 나뭇가지와 함께 떨어진다. 부화한 애벌레는 도토리를 먹고 자란다. 이 벌레는 남들이 먹지 않는 설익은 열매에서 틈새를 찾았다.   ‘도토리’에서 태어난 회사가 ARM이다. 영국 PC 시장을 선도한 에이콘 컴퓨터가 미국 애플 등과 합작 투자해 1990년 ARM을 탄생시켰는데, 에이콘(Acorn)이 도토리를 뜻한다. 에이콘으로 작명한 것은 애플(Apple)보다 전화번호부에서 앞서기 위해서였다.   초대 최고경영자(CEO)로서 ARM을 10년간 이끈 로빈 삭스비는 애플의 울타리에 머무는 대신 진화를 꾀한다. 생물 진화의 한 유형은 도토리거위벌레처럼 남들이 안 먹는 것을 독차지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진화하는 기업은 남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를 먼저 창조해 제공하면서 그 시장을 장악한다. 반도체 생태계에서 삭스비는 로직 반도체를 설계하는 지식재산을 널리 제공한다는 전략을 최초로 궁리해낸다. 그 바탕에는 고속·저전력 칩 설계 기술이 있었다.   ARM의 설계가 활용되는 대표적인 로직 반도체가 스마트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다. 아울러 랩톱 컴퓨터, 수퍼컴퓨터, 자동차, 데이터센터 등에 들어가는 칩도 있다. 삼성전자와 애플 등 고객사들은 ARM의 설계를 받아 필요에 따라 수정해 활용한다. ARM은 라이선스 계약에 따라 로열티 등을 받는다. 2021년 매출은 전년보다 35% 많은 27억 달러,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은 68% 급증한 10억 달러로 발표했다. 이익률이 37%에 이른다.   상장을 앞둔 ARM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남들이 아직 들어가지 않은 영역에 귀사가, 혹은 당신이 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백우진 / 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 대표돈의 세계 진화 arm 생물 진화 대신 진화 에이콘 컴퓨터

2023-09-05

[돈의 세계] 쇠퇴하는 중국과 짐 로저스

기다리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지만 찾아 나서는 사람에게 더 좋은 일이 생긴다. 13세기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의 말이다. 그는 중국이란 신비의 세계를 서방에 알렸다. 20세기에 중국이 개방정책으로 빗장을 풀자 각국 투자가 쇄도했다. 세계 공장이자 수출 강국으로 발돋움한 중국의 세계 경제 영향력은 막강했다. 선진 기술, 경영 노하우, 브랜드 확보를 위해 해외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역(逆) 마르코 폴로 효과’가 유행했다. 성장을 거듭한 중국 경제가 요즘 침체에 빠졌다. 냉각된 자산시장, 식어버린 수출과 소비, 늪에 빠진 청년실업으로 2분기 경제지표는 시장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15년간 미국의 최대 수입국 자리를 굳건히 지킨 중국이 1위 자리를 멕시코에 내줬다. 캐나다도 약진해서 2위 자리를 차지해 중국이 3위로 밀려났다. 미·중 고율 관세 분쟁과 미국의 중국에 대한 첨단기술 견제가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이탈리아가 경제적 이익이 적다며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에서 탈퇴할 뜻을 미국에 내비쳤다. 주력산업인 자동차 제조업을 위해 대만에서 안정적으로 반도체를 공급받아야 하는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미·중 갈등 격화로 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수출에 먹구름이 낀 것도 사실이나 좋은 쪽도 있다. 올 상반기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신고액 기준)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생산시설을 짓는 그린필드 투자가 84.7%로 반도체, 이차전지 같은 첨단산업에 집중됐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는 국가 간 패권경쟁은 피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속에서 미래 권력의 움직임에 대한 전망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다. 투자자 짐 로저스는 미래의 지도자는 차라리 영어보다는 중국어를 배우는 게 더 이득이 될 것이라 했다. 딸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뉴욕에서 싱가포르로 이사한 그는 여전히 똑같은 생각일까. 조원경 /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돈의 세계 중국 로저스 세계 경제 외국인 직접투자 수출 강국

2023-08-02

[돈의 세계] 생계비 위협과 기후 재앙

인플레이션은 노상강도처럼 폭력적이다. 무장 강도처럼 무섭다. 저격수만큼 치명적이다. 물가상승을 억제하려 고군분투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말이다. 우리나라 1분기 실질임금이 전년 동기 대비 2.7% 감소했다. 분기 기준으로 역대 가장 큰 폭이라 서민의 고달픔이 느껴진다. 작년 실질임금이 죄다 하락하는 와중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헝가리만 실질임금이 2.6% 올랐다. 그런 헝가리도 올해 인플레이션 앞에서 맥을 못 췄다. 5월 미국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이 전년 대비 4.0% 올랐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농산물을 뺀 근원 CPI는 전년 대비 5.3%, 전월 대비 0.4% 상승해 물가 불안은 여전하다. 그간 일손이 부족한 노동시장 덕에 서비스 분야 블루칼라 일자리 급여가 특히 가파르게 올랐다. 통화정책 당국은 높은 물가, 임금 상승, 낮아진 구매력의 악순환 속에서 통화정책의 항로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세계 식량 가격이 하향 곡선을 그린 후 5월 약 1년 만에 소폭 상승했다. 설탕 가격이 크게 오른 탓이다. 설탕 가격은 시차를 두고 가공식품과 외식비를 비롯해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의 하반기 주요 변수로 엘니뇨로 인한 기후 이변을 꼽는다. 세계기상기구도 올 중반부터 엘니뇨로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속출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홍수·가뭄·폭염 같은 극단적인 날씨는 설탕을 비롯한 곡물 생산에 악영향을 준다. 오경의 하나인 예기(禮記) 예운(禮運)편에는 ‘음식남녀’ 구절이 나온다. “음식과 남녀 간의 사랑은 사람들이 크게 바라는 일이고 사망과 빈고(貧苦)는 사람들이 크게 싫어하는 일이다.” 공자의 말씀을 헤아리며 인간의 근원적 고통을 생각한다. 작금의 서민 가계 생계비 위기의 근저에는 기후변화에 기인한 팬데믹이 자리했었다. 기후 재앙이 시시각각으로 삶의 저변을 할퀴는 현실을 모두가 목도하고 제대로 대응해야겠다. 조원경 /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돈의 세계 생계비 위협 기후 재앙 생계비 위협 기후 이변

2023-06-19

[돈의 세계] 사랑과 돈의 순도

영화 ‘타이타닉’과 소설 ‘소나기’는 순도 100% 사랑 이야기다. 물질도 순도가 중요하다. 금 순도는 14/18/24K로 구별한다. 14K는 58.5%, 18K는 75%, 24K는 99.9% 순도를 자랑한다. 순도가 높아야 비싸다. 생성에 10억년 걸리는 다이아몬드도 그럴까? 다이아몬드는 불순물이 없어야 투명해 가치가 높지만 불순물이 0이면 아름답지 않다. 불순물이 좀 들어가야 빛이 반사돼 은은한 빛이 돌고 예뻐 비싸다. 다이아몬드란 예외가 있지만 산업소재는 순도가 경쟁력을 가른다.   폴리실리콘은 반도체와 태양광 모듈의 기초 원료다. 모래에서 순도 높은 규사를 정제한 후에 전기로 녹여 고순도 폴리실리콘을 만든다. 2011년 주식시장을 달궜던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장세에서 시장을 놀라게 한 화학주가 있었다. 3만원 밑에 머물다 2011년 65만7000원까지 오른 태양광 회사 OCI다. 당시 고효율 태양전지 폴리실리콘은 독일 바커, 미국 헴록, 한국 OCI 3사만 공급했으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OCI는 9나인(순도 99.9999999%), 10나인급 초고순도 폴리실리콘을 공급해 업계 1위로 발돋움하려 했지만 상황은 급변했다. 순도가 좀 못하나 월등히 싼 7나인급 중국산 폴리실리콘이 시장을 파고들었다. 공급과잉 여파 등으로 OCI 주가는 2020년 3월 3만300원까지 폭락했다. 그럼에도 순도는 여전히 중요하다. 반도체 웨이퍼용 폴리실리콘은 11나인급 이상이어야 한다. 핵에 사용되는 우라늄 순도 싸움도 한창이다.   우리 몸에 평상시보다 수분이 2% 부족하면 갈증이 난다.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는 한때 잘나간 음료수 2%의 광고 카피를 보며 세상의 이치를 생각한다. 사랑은 서로에 대한 이해 차이로 완전함에 갈증을 느낀다. 시장은 순수의 결정을 외치며 돈에 목말라한다. K-태양광이 북미에서 선전하고 있다. 한화 큐셀의 올블랙 모듈이 순도에 심미성까지 더해 흐뭇하다. 조원경 /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돈의 세계 사랑 고순도 폴리실리콘 10나인급 초고순도 순도가 경쟁력

2023-05-21

[돈의 세계] 주가 예측이라는 꿈

영국 시인 콜리지는 “과학은 마치 시(詩)와 같다”며 “왜냐하면 과학도 시처럼 희망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식과 기술도 시와 비슷하다. 둘 다 미래 현금 창출이라는 꿈을 좇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 사이는 강한 ‘화학 반응’을 보인다.     신기술을 만난 주식은 강렬하게 타오른다. 연소 에너지를 활용해 사업화에 성공하기도 하고, 전부 소진한 뒤 재만 남기기도 한다.   어떤 신기술은 주가 예측이라는 꿈을 자극한다. 최근에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기대를 받았다. 미국 플로리다대 연구팀은 주가를 예측하는 데 챗GPT를 활용해봤다.     나스닥 상장기업과 관련된 뉴스 헤드라인을 입력해 챗GPT가 긍정 또는 부정을 평가하도록 했다. 이를 다음 날 주가 등락과 비교했다. 챗GPT의 적중률은 지난해 10월 이후 99%를 기록했다.   챗GPT는 주가의 방향을 지속적으로 맞힐 수 있을까. 더 진화하면 더 정교한 주가 예측력을 장착할까.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복잡계인 주식시장은 어떤 기술로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챗GPT에 앞선 기대주가 빅데이터였다. 로렌스 서머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데이터 과학자가 빅데이터를 활용한 주가 예측에 의기투합했다. 두 사람은 ‘개별 주식 검색 빈도와 주가의 관계’ 등을 놓고 몇 개월 동안 함께 작업했다.     그러나 성과는 전무했다고 다비도위츠는 책 『모두 거짓말을 한다』(2017)에서 털어놓았다. 국내에서는 코스콤이 빅데이터 주가예측 서비스를 2013년 말에 시범 서비스했으나 상용화하지 못했다.   주가 예측은 ‘영구기관’을 떠올리게 한다. 영구기관은 외부 에너지 없이도 영원히 작동하는 가상의 기계다. 둘 다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다시 시도될 것이다. 주식과 기술은 시적(詩的)이기 때문에. 백우진 / 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 대표돈의 세계 주가 예측 빅데이터 주가예측 주가 예측력 주가 등락

2023-04-28

[돈의 세계] 주식시장과 불꽃놀이

여자가 임신하기 좋은 온도는 영화 ‘베티 블루’ 제목처럼 37.2도다. 이보다 사람 몸의 온도가 몇도 높을 때는 사달이 난다. 리튬이온전지는 산소, 열(발화점 이상의 온도), 연료의 삼박자가 맞으면 불이 난다. 올해 배터리 주식에 가수요가 붙어 불이 났다. 도파민이 분비된 사람들은 위험 심리를 잠재우고 기대감과 즐거움으로 환호했다.   테슬라가 전기차 값을 연이어 내렸다. 고공행진 하던 이차전지 핵심 광물인 리튬·코발트·니켈 가격이 1년 반 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의 수요 둔화와 공급 증가 영향에 따른 것이다. 이차전지는 유망한 영역이나 새로운 사실도 아니고, 단숨에 너무 급등해 그 배경이 궁금하다.   1월 초 급락해 아사 지경이었던 시장에 산소 호흡기가 필요했을 수 있다. 지수가 큰 폭으로 하락했거나 지수 전망이 불확실할 때 테마주가 시장을 주도했던 사례는 과거에도 흔했다. 늘어난 이익과 향후 성장성, 배터리 관련 베스트셀러 책, 주식 유튜브의 요란한 노이즈, 인플레이션감축법에 의한 보조금 지급은 이야기 만들기에 충분했다. 광란의 질주가 이어졌다. 2017년 신라젠, 2020년 신풍제약, 2021년 메타버스 관련주에 이어 이차전지 관련 주식의 버블 논란이 한창이다. 몇 년 전 테슬라 주가가 그랬듯이 에코프로 주가 급등은 2030년 이익까지 가불했고 공매도도 힘을 못 썼다.   우량 기업은 영업으로 현금을 지속 창출해 투자하고 차입금도 갚고 배당도 지급하는 회사가 아닐까. 영업이익과 매출이 지속 성장하면서도 현금 관리에 보수적인 기업은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투자하는 회사가 그런 기업이었나? 가장 질 좋은 잠을 자기에 적합한 침실 온도는 18℃ 언저리다. 침구의 보온 효과까지 고려하면 16℃가 가장 좋다. 주식시장에서 불꽃놀이의 끝이 어디인지 몰라도 막차 탄 사람은 겨울처럼 한기를 느낀다. 조원경 /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돈의 세계 주식시장 불꽃놀이 이차전지 핵심 테슬라 주가 침실 온도

2023-04-21

[돈의 세계] 짧으면 돈이 되는 것들

우리가 뭔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attention span)은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12초였다. 이제 8초로 뚝 떨어졌다. 9초인 금붕어보다 못하다. 그래서였나? 틱톡, 스냅챗, 인스타그램, 유튜브 쇼츠처럼 짧을수록 돈이 되는 게 유행한다. 짧은 것은 명확해 집중하기 쉽다. 지루함을 싫어하는 현대인이 짧은 동영상에 매료되는 이유다. 쇼츠 콘텐트는 접근성이 높다. 공감대를 잘 형성해 쉽게 공유된다. 제작 비용도 낮아 금상첨화다. 젊은 층은 잘 요약된 정보를 속성으로 습득한다. 제한된 시간에 다양한 주제의 콘텐트를 섭렵하길 좋아한다.   짧은 시간에 사람의 관심을 끌고 유지하는 능력이 돈 버는 기술로 중요해졌다. 짧은 비디오, 인스턴트 메시지, e메일이 소비자의 흥미를 끈다면 회사의 수익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한층 커진다. 광고주는 이런 변화를 인지하고 행동한다. 재생 시간이 짧아야 광고 클릭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잘 활용한다.   유튜브 쇼츠는 최대 60초의 동영상을 시청자가 스크롤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광고 수익을 번다. 유튜브 쇼츠의 수익은 비밀에 부쳐져 있다. 올 2월부터 유튜브는 쇼츠 성장을 낙관하며 수입 배분 계획을 발표했다. 쇼츠 크리에이터에게 광고 수익의 45%를 할애해 주기로 했다. 페이스북(55%), 틱톡(50%)보다 낮은 수준이나, 수익을 챙길 기준을 낮춰 더 많은 창작자를 끌어모으려 한다. 짧은 것들의 치열한 대결에서 유튜브 쇼츠가 새 돈벌이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e메일 제목과 발표 자료는 간결하고 명확해야 한다. 광고 문구는 짧아야 기억에 남는다. ‘한 해의 모든 숨결과 꽃은 한 마리 벌의 주머니에 들어있다.’ 얼마나 짧고 강력한 시구인가? 19세기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Less is more(적을수록 더 좋다)”라며 짧음의 미학을 외쳤다. 좋은 글은 덜어냄을 계속해 더 덜어낼 수 없을 때 빛이 난다. 조원경 / 울산과학기술원 교수돈의 세계 유튜브 쇼츠 쇼츠 콘텐트 쇼츠 크리에이터

202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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